2023년 여름, ‘당근다움’을 더욱 선명히 하는 리브랜딩을 통해 우리는 ‘당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첫걸음을 뗐습니다. 지난했던 여정을 돌아보는 글을 한 편 쓰고 싶다고 다짐했으나, 리브랜딩 이후의 전략들을 하나둘 수행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네요. 당근 팀은 리브랜딩을 계기로 더욱 단단하고 당근다워진 모습으로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첫 브랜드 디자이너로 당근에 입사해 20여 명의 리브랜딩 TF를 이끌기까지, 만만했던 순간은 없었는데요.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나아갔던 그 2년간의 여정을 톺아보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2020년, 브랜딩팀 슬랙 채널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창업자이자 공동대표인 Gary가 남긴 글이었습니다. ‘앱 이름을 당근마켓에서 당근으로 바꿔 볼까요?’ 이 한 줄의 제안을 시작으로 당근의 리브랜딩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즈음, 저는 입사 5개월 차 당근 뉴비이자 브랜딩팀의 첫 번째 브랜드 디자이너였습니다. 당근에 오면서 ‘언젠가 리브랜딩 하겠지’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당근’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용자들이 하나둘 당근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한 덕분도 있겠지만, 당근이라는 이름에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근이 처음 시작된 2015년, 지역 생활 커뮤니티에 진심이었던 창립 멤버들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인 ‘당근’으로 서비스명을 짓고 싶어 했지만, 야채 이름의 서비스명이 다소 파격적이라 중고 직거래를 뜻하는 ‘마켓’을 붙여 ‘당근마켓’으로 시작했다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8년의 경험이 겹겹이 쌓인 서비스 이름을 바꾸는 것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마켓’을 그냥 떼어버리고 마는 게 아니라, ‘왜’ 떼었는지 내외부 고객에게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가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필요했죠.
같은 해 가을 막 입사한 브랜드마케터 Jerome과 리브랜딩의 문을 여는 담론을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브랜딩 여정이 한눈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당근마켓’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던 때여서, 내부에서도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 자체를 어색하게 느끼는 구성원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서비스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때였습니다.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MAU가 700만에서 1400만으로 로켓 성장했던 시기였으니까요. 팀 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하고 대응해야 할 일도 넘쳐납니다. 측정할 수 있는 목표와 성과를 위해 달리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어떤 이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호사스러운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기업의 인하우스 조직에서 전사 리브랜딩과 같은 장기 구축성 프로젝트를 운영 업무와 병행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인데요. 당근처럼 브랜딩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조직에서조차 그 균형을 쉬이 맞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고거래를 넘은 로컬 커뮤니티로서의 포부를 간직한 채, 2020년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우선순위 테이블 중 2번, ‘중요한데 시급하지 않아 언제 할지 결정해야 하는’ 업무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장하는 조직에서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우선순위 2)’은 ‘중요하고 시급한 일(우선순위 1)’에 패한다. 그리고 브랜딩팀은 다른 조직들의 우선순위 1번 업무가 집결하는 곳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브랜드 자산은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였고, 고객이 보는 많은 것들이 브랜드 디자인의 통제 범위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네이밍 문제 말고도 당장에 브랜드적으로 규정이 필요한 사안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죠.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마치 달리고 있는 차의 바퀴를 갈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해내야 했습니다.
급격히 늘어가는 운영 업무와 성장 과제 속에서, 저와 동료들은 ‘린(Lean) 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출처 https://blog.crisp.se/2016/01/25/henrikkniberg/making-sense-of-mvp
위 그림은 당근에 입사하면 신규 입사자 교육 때 만나게 되는 그림입니다. 린 애자일 방법론에서 언급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최소기능제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시이죠. 첫 번째 방법은 자동차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바퀴, 차체 등 부분 요소를 단계별로 추가해 갑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일단 ‘바퀴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제품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가죠. 첫 번째 방법은 자동차를 만드는 긴 시간 동안 사용자가 이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두 번째 방법은 당장 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제공하고 이를 발전시키며 결과적으로 사용자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당근의 모든 서비스는 이 두 번째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MVP 개념을 브랜딩 업무에 적용한다면, ‘당장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로 풀어볼 수 있을 것 입니다. 예를 들어 브랜드 자산의 활용 정책이나 가이드가 마련되지 않았어도, 이 룩앤필(Look and Feel)이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여 좋은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걸까요? 브랜딩에서 ‘최소’는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소프트웨어 제품과 달리, 브랜딩이라는 인식 게임에서는 뇌리에 박힌 인상, 그것이 곧 브랜딩이 됩니다. 자동차 회사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바퀴 회사 혹은 킥보드 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린 브랜딩 과정에서 퀄리티를 타협하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선택지이며,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린 브랜딩도 처음부터 성능과 디자인이 완벽한 자동차를 내놓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매번 어쨌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