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글쓰는 셰프. 오래된 가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백년 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을 집필한 작가이자, 서울 곳곳에서 여러 가게를 운영해온 요리사 겸 자영업자다. 그의 눈에 비친 가게는 단순한 비즈니스 공간이 아니다. 소통을 기반으로 동네를 하나로 묶어주는 유대의 공간이며, 지역 공동체를 단단하게 엮어내는 공간적 뿌리 같은 존재다.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가지각색의 가게들. 이 중에는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빠르게 문을 열고 닫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버텨온 가게도 있다.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또 이런 가게들은 우리 동네, 혹은 동네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잊혀가는 연결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동네 가게의 역할에 대해 박찬일 셰프와 이야기 나눴다.
복잡한 미로처럼 늘어선 가게 간판들은 언제부턴가 한국인의 생활과 경제를 지탱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늦은 밤에도 불을 밝히는 수많은 가게와 따끈한 음식을 싣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화려하게 꽃 피운 듯한 대한민국의 자영업 문화는 때때로 현실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가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을까 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아직 교과서에 나오나요? 거기 보면 주인공이 설렁탕을 사 먹잖아요. 시기가 1920년대 일제강점기인데, 그때부터 그런 가게의 형태를 볼 수 있죠. 이상, 박태원의 소설에도 보면 가게들이 정말 많이 나와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농사짓는 것보다 가게를 여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이 된 거죠. 근래에 이르러서는 고용 시장에서 밀린 이들이 가게를 차리게 되면서 확 많아졌고요.
먹고 살기 어려우니 가게를 열게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호황기 때는 대학을 나오기만 해도 회사를 골라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렇다 보니 첫 직장이 가게 창업이 되는 경우도 많죠. 다니던 회사 그만두면 치킨집 차린다는 말도 있고요. 대왕 카스테라, 탕후루 이런 게 미친 듯이 나오는 게 자영업 예비군이 너무 많아서예요.
한국은 유행하는 음식도 정말 빠르게 바뀌는 것 같아요.
‘이 음식 인터넷에서 봤어’ 이런 말을 흔히 하잖아요. 사실 인터넷 유행에 민감하고 빨리 바뀌는 게 우리나라 자영업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신당동 연탄불고기집이 뜬다고 해서 가 보면 이미 줄이 엄청 서 있죠. 곧 주변에 비슷한 가게들이 열 개, 스무 개씩 생겨요. 그러다 희소성이 떨어지고 유행이 지나면 또 아무도 안 가죠. 카페에서는 언젠가부터 모두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팔다가 이제는 또 두바이 초콜릿을 팔아요.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사서 팔아요. 메뉴 개발할 시간도 없으니 양산품을 파는 거죠.
요즘은 동네 가게들이 대부분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동네만 똑같은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가게들이 많죠. 대표적인 게 프랜차이즈잖아요. 물론 프랜차이즈도 여전히 자영업자가 하는 가게예요.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준다는 취지가 있으니까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동시에 전문성을 갖추거나 차별화하기도 어려워요. 통일성 있는 레시피를 전국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알려주는 거잖아요. 그럼 내가 독점적으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을까요? 자기가 가게를 운영하는데도, 파는 것에 대해 식당 주인이 전문성을 쌓아가기 어렵단 뜻이에요.
이것도 겉보기에는 음식을 팔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유행을 파는 것에 가까운 거죠. 이렇게 유행에 너무 빠르고 민감해서 생기는 문제가 자꾸 가게 폐업률이 높아져요. 많이 사라지는 만큼 많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자영업 폐업률은 실질 폐업률로 보면 훨씬 높죠.
실질 폐업률이 높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사실상 돈을 못 버는데 열고만 있는 가게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가게들이 꽤 많아요.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을 보면 제가 체감하기로는 가게 두 곳 중 한 곳은 이익이 없는데 문만 열고 있어요. 그중에 또 반은 적자 수준을 넘어서서 자기 인건비도 안 나오고요. 편의점에서 종종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주인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 이런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게 현실이죠.
이익도 안 되는 데 그냥 가게 문만 열고 있다고요?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과 가까운 인천만 해도 그런 곳이 정말 많아요. 가게 주인이라서 하는 경우도 있고 건물주가 요구하기도 하고요. 나가지 말고 월세 안 받을 테니까 가게 문만 열어두라고. 서울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없지만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늘 다녀왔던 우리 동네의 그 가게, 과연 5년 뒤에도 남아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새로 생긴 가게 중 5년간 버티는 곳은 다섯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매일 수백 개의 가게가 문을 닫고 또 새로 생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20%는 자영업자로 미국의 3배, 일본의 2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자영업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한편, 같은 해에만 100만 명의 자영업자가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동네 가게들이 문을 닫는 궁극적인 이유가 뭘까요?
우리 산업 구조 전체가 지역의 자영업자들이 지속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대도시에만 일자리가 몰리고, 지역 경제가 점점 힘을 잃다 보니 동네 가게도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거죠. 그러니까 또다시 지역 상권 문제는 극심해지는 거고요. 아마 우리가 떠안고 있는 시대의 문제일 거예요. 단순히 동네 가게가 잘 되느냐 못 되느냐의 문제를 넘어, 그 지역에 사는 우리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단골손님의 얼굴만 봐도 알아서 메뉴를 준비하는 동네 식당, 이모저모 소식을 나누는 미용실, 온 동네 아이들이 들르는 문구점까지... 동네 가게들은 단순히 음식이나 물건을 사고파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동네에 터를 잡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삶과 문화를 나누고 지켜주는 공간으로서의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다. 동네 가게에는, 무언가 분명 특별한 게 있다.
옛날에는 동네 단골 가게들을 다니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가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요.
예전에는 동네마다 가게가 엄청 세분화돼 있었죠. 동네 가게를 통해 사람들이 상품의 정보를 얻고 사용법을 익히고 유대 관계도 맺어왔고요. ‘지물포’라는 가게를 지금은 잘 모를 거예요. 벽지 장판을 팔고 교체해 주는 가게였는데, 이사할 때마다 창구가 돼 주는 집이었죠. 이사할 때 이런 곳이 정말 큰 도움이 됐죠. 그런데 요새는 인터넷으로 주문하죠. 시공은 업체에 맡기고요. 이를테면 시계 살 때도 금은방을 가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주문하잖아요. 라디오 사려면 전파사에 가야 했는데, 이것도 마트 가면 있죠. 1만 원이면 살 거예요. 심지어 저렴한 해외 직구로 사기도 하잖아요. 이런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폭으로만 보면 거의 우주적 수준의 변화죠.
오늘날에는 동네 가게의 역할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에는 ‘저 집 딸이 취직했대’ 이런 것까지 동네 가게에서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서로 원하지는 않아요. 싼값에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게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동네 가게에 심리적으로 위탁하는 역할은 여전히 있어요.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이 되어주거든요.
동네 가게에서 정보를 얻는다고요?
‘인터넷이 정보의 홍수다’ 그런 얘기가 있지만 사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는 이미 한발 늦은 게 많아요. 어느 동네에 어떤 가게를 열려고 한다, 그럴 때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기반으로 하면 너무 늦는 거죠. 인터넷은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빠르게 변질되기도 하거든요. 누구나 다 보고 있으니 정보의 값어치와 신뢰도도 떨어지고요.
옛날뿐만 아니라 지금도 토지나 집을 사거나 상권을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동네 가게를 찾아요. 진짜 동네 정보가 오가는 곳은 인터넷이 아니라 동네 미용실이나 복덕방이거든요. 여기서 오가는 정보는 굉장히 섬세해요. ‘그 가게 주인이 하도 지저분하게 해서 망한 거야’, ‘그 가게는 지금 근저당이 걸려서 경매 상황이 아주 복잡해’ 이런 생생한 정보를 듣게 되죠. 과거에 동네 찻집, 다방, 식당에서 정보 교환이 일어나던 것에 비해서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가장 실시간의 진짜 정보가 오가는 곳은 동네 가게인 거죠. 정보의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고요.
가까운 곳에서 실시간으로 오가는 정보라 값질 수 있다는 거군요.
그쵸. 당근도 비슷하지 않나요? 중고거래할 때도 계속 지역 인증을 시키잖아요. 저도 쓰고 있는데, 진짜 그 지역에 사는 게 맞는지 자꾸 확인시키던데요. 분명 더 넓은 지역에서 물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죠. 하지만 당근이 지역을 정해두는 이유는 분명 있을 거예요. 그게 방금 말씀드린 동네 가게의 가치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좋더라고요. 제가 반포동에 살면, 개포동에 사는 사람은 제가 보고 있는 주방 칼을 절대 못 보는 거잖아요. 보고 있는 사람이 적으니까 내가 획득할 가능성도 높고요. 물론 전국적으로 더 좋은 물건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동네에서 믿고 친근하게 거래할 수 있고 그러니까 당근을 찾게 되는 거죠. 동네 가게가 하는 역할도 비슷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동네 가게에서는 사장님과 손님이 서로 믿고 거래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어요.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걸 넘어, 지역 안에서 신뢰를 만들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관계들이 지역 공동체나 상권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동네 가게가 거기 있기만 해도 동네에 도움이 되는 느낌이네요.
동네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터줏대감 같은 가게들은 거의 우리 몸의 모세혈관과 같다고도 생각해요. 모세혈관은 몸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며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동네 가게들도 마찬가지예요.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매개체죠.
그런 가게들 중에서도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지역 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미용실, 수선 가게는 매일 안 가도 살지만 밥은 매끼 먹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골목 식당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그 결과로 상권과 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어요. 또 음식이라는 게 입에 들어오는 거라서 그런지 정서적인 부분을 건드리거든요. 예를 들어 특정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가게면, 주인이 깐깐하고 불친절해도 좋은 물건만 있으면 또 가요. 하지만 식당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주인이 싫으면 안 가요. 벌써 식당에서 주인을 부르는 말도 ‘이모’라고 그러잖아요. 미용실 가서 이모라고 하지는 않죠. 동네 가게와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에 그래요. 음식은 되게 정서적인 거예요. 힘들던 시기에 먹던 음식들은 다 떠오르잖아요. 그 기억은 평생 가요.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가게 주인과 손님 사이, 보이지 않는 유대 관계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자영업이 문을 닫는다는 건, 직장인이 회사를 그만두는 거하고 달라요. 가게를 열 때 보통 자신의 모든 것, 가족의 모든 것까지 걸고 문을 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한 가게가 망하는 건 대체로 자기 삶이 파괴되는 겁니다. 이런 사장님들이 모두 지역 구성원의 일원이잖아요. 그러니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동네 가게가 사라지면 그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네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는 더 쉽게 무너질 수 있어요. 옛날에는 그런 걱정들을 했죠. 마트가 생겨나면 동네 사장님들이 타격을 입겠다. 그런데 이제는 마트가 아니라 온라인 마켓으로 다 흡수되고 있잖아요. 사실 마트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사람도 자영업이고,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하는 사람도 자영업이에요. 모두 다 자영업이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진짜 문제는, 동네에서 번 돈을 동네 사람인 사장님 혹은 해당 동네가 온전히 가져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특정 개인 혹은 특정 지역에 부가 집중되고 골고루 나눠지지 않는 거죠.
그럼 지역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서 가게와 상권의 붕괴는 지역 붕괴랑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갈수록 농촌 인구는 감소하고, 도시에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그러면서 관계망도 안 엮이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동네에서 서로 알고 지내고 정보를 주고받던 그런 커뮤니티가 없어지면, 그 지역 자체가 점점 더 익명화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죠. 최근에는 동네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잖아요. 관계망 자체가 부실해지고 끈이 없어지는 거죠.
동네 가게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 소멸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선후 관계는 없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역이 무너져 가는 거죠. 그러니 자영업을 두고 단순히 ‘장사가 잘 된다, 안 된다’의 문제를 넘어서, 그 지역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럼 동네 가게들이 살아남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식당 입장에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유행이 빨라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어서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먹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커피 전문가 모임 이런 데서 기압 이야기를 해요. 어마어마한 전문성을 획득하고 수준이 높아진 거예요. 이게 한국 사람 특징이에요.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려면 동네 가게들도 자기만의 특색, 전문성을 가진 가게를 운영해야 해요. 그냥 남들을 따라갈 게 아니라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야 하는 거죠.
사람들은 그런 가게들을 더 자주 찾으면 되겠네요.
손님들도 ‘자영업자를 돕자’ 이런 것보다는, 좋은 식당이나 카페를 발견하면 자주 찾아가고 입소문도 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쉽게 말해 단골이 되는 거죠. 더 많이 보게 되면 서로 상호 교통망이 강해지거든요. 서로 가까워지죠. 물론 오늘날에 맞게 관계의 적정한 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 관계를 형성한다는 거죠.
어디서든 편리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동네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잖아요. 사장님 안부도 묻고, 가벼운 인사도 나누는 그런 거요. 이런 작은 관계들이 모이면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도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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