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톨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강남성모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는 의사다. 38년간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 온 그는 행복을 단순히 기쁨이 아니라 ‘잘 존재하는 것(well-being)’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오프라인 연결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일상 속 이웃들과의 관계망. 가까운 네트워크가 우리의 정신 건강을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성장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덕분에 국민의 대다수가 더 이상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파트의 고급 ‘커뮤니티’ 시설도 경쟁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점점 더 이웃의 얼굴을 마주할 일은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인사 대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서둘러 누르게 됐다.
마음의 문마저 닫힌 시대,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 노력했으니 더 잘 살게 될 거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연결, 그 사소해 보이는 교류의 ‘커뮤니티’가 우리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든든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채정호 교수는 말한다.
한국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거기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있어요. 한국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 문화예요. 한국인은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불러요. 국가 말고도 ‘우리 집’, ‘우리 가족’처럼 ‘우리'라는 말로 본인이 속한 집단을 표현하죠. 예전부터 같이 농사도 짓고 어울려 지냈던 민족이라 집단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같은 말을 영어로 하면 ‘my country’, ‘my home’, ‘my family’잖아요. 동양과 반대로 서양은 개인주의가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개인적 가치나 본인의 개성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한국도 많이 개인주의로 바뀌지 않았나요?
최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바뀌긴 했어요. 삶의 방식이나 취향이 많이 다양해졌죠.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때는 여전히 남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다들 유튜브로 돈 버는 게 꿈이라고 하잖아요. 사회에서 “이제는 유튜브가 답이다”라고 하니까 그대로 하는 거예요. 물론 어떤 사람이든 사회의 영향을 안 받을 순 없겠지만, 남의 영향을 덜 받는 개인으로 존재할 때 개인주의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선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라고 하기엔 아직 먼 거죠.
한국인은 여전히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잘 지내고, 다른 사람들의 영향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이렇게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집단 네트워크를 가져야 하죠.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오히려 경쟁 상대가 돼 버린 거예요. 여전히 집단과 잘 지내는 일이 중요한데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거죠. 홀로 있는 것에 취약하다면 억지로라도 누군가와 교류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지는 거고요.
결국 우리에겐 집단이 중요한데 정작 소속된 집단은 많이 사라졌다는 게 문제의 원인인 거네요.
맞아요. OECD에서도 한국의 커뮤니티 관련 지표가 굉장히 취약하다고 지적했어요. 안전 같은 경우는 굉장히 높은 편이고 다른 지표들도 얼추 중간 정도인데, 커뮤니티 지표는 거의 0점에 가까워요. 무너진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오히려 외국 같은 경우는 커뮤니티가 엄청 잘 구성돼 있어요.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도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죠. 외국은 땅이 넓고 다른 지방에 가기 어려우니까 오히려 가족이나 친척 네트워크는 적어요. 잘 만나야 1년에 한두 번 만나죠. 대신 개인의 삶을 너무 파고들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가 잘 만들어져 있어요. 학교 안에 자모회라든가, 시민운동과 관련된 네트워크처럼 말이에요.
한국에서는 어쩌다가 이렇게 커뮤니티가 무너지게 된 걸까요?
급격한 근대화의 영향도 있고, 하나 더 짚자면 물질만능주의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잘 산다"는 표현인데요. 지금 우리는 이 표현을 부유 하다는 의미로 쓰고 있어요. “쟤네 집 되게 잘 살아"라고 하면 부자라는 뜻이고, 반대로 “되게 못 살아”라고 하면 가난하다는 뜻이잖아요. 경제 성장을 이루려던 새마을 운동 당시에도 표어가 “잘 살아 보세”였어요. 그런데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성공적이겠지만, 정신적으로도 정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따져보면 그렇지 않아요. 과거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외로워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우울증 발생률이나 자살률이 많이 올랐잖아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만을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진정으로 잘 사는 게 무엇인지는 놓쳐버린 거예요. 게다가 빠른 경제 성장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자신을 남들과 더 비교하게 되기도 했고요.
함께 살아간다는 유대감이 사라지고, 개인으로 흩어져가는 지금. 동네는 물리적으로 머무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졌다. 이제 동네는 얼굴 모를 사람들로 가득한, 나와는 무관한 곳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떠올릴 때, 여전히 혼자인 모습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잘’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건강하게 잘 살려면 경제적 요소 말고 어떤 게 더 필요할까요?
여러 요소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사회적 웰빙이에요. 사회적 웰빙은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나누는 상태를 말해요. 인간은 사실 연결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거든요. 기본적으로 소속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인간은 혼자서는 굉장히 취약한데, 함께 살았기 때문에 맹수를 이기고 문화나 사회도 만들어 나갔어요. 역사적으로 인간이 혼자서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우리의 DNA 안에는 혼자서 지낼 수 없다는 게 강력히 뿌리박혀 있는 거죠.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욕구를 무시하고 홀로 지내기는 어려워요. 겉으로 봐서는 불편함 없이 잘 지내는 것 같겠지만, 거의 존재론적인 불안이나 불편감이 다가올 수밖에 없어요.
내 주변의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게 핵심인 거네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연결은 가족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네트워크가 바로 동네에서의 연결, 내가 거주하는 지역 사회에서의 연결이에요.
가족 관계는 이해가 가는데, 동네 네트워크도 중요하다니 좀 의외네요.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동네는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오랫동안 씨족사회였으니 본인이 거주하는 곳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강력했죠. 또 가족과 비교했을 때 장점을 갖기도 하는데요. 가족은 가장 가깝고 늘 함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같은 이유로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줄 때도 있어요. 그에 비해 동네 이웃들은 오프라인으로 충분히 가까이 위치해 있지만 가족만큼 밀착된 관계는 아니에요. 가족처럼 서로 부대끼면서 생기는 갈등이 덜하다는 점에서 좋은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죠.
동네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도 있을까요?
‘로제토 효과’라는 게 있어요. 펜실베이니아에 로제토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되게 건강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담배도 많이 피고 술도 많이 마시고 기름진 음식도 많이 먹는 거예요. 인접한 지역에 비슷한 식습관을 가진 뱅고라는 마을은 건강 상태가 엉망인데 왜 이 마을 사람들만 건강한 건지 연구해 봤죠. 알고 보니 로제토 마을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민 와서 만든 마을이었는데요. 영화 같은 데에서 이탈리아 사람 한 명이 동네에 신랑감을 데려오면, 온 동네가 신나서 잔치를 벌이잖아요. 로제토에서도 마을 축제나 행사가 엄청 많았던 거예요. 우리나라로 치면 이웃끼리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던 셈이죠.
그런 커뮤니티에서는 생활 습관이 나빠도 건강이 잘 나빠지지 않더라는 거예요. 반대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혼자 지내면 나빠질 수 있는데요. 실제로 로제토가 현대화되면서 동네 커뮤니티가 다 무너지니 옆 마을 뱅고랑 건강상태가 똑같아졌다고 해요. 흔히 아는 의학적 상식으로는 굉장히 안 좋은 생활을 했는데도 건강하다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로제토 모순’이라고도 불러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잘 유지하는 게 커뮤니티 전체의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의학적 증거이기도 하죠.
지역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우리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였네요.
지역 커뮤니티는 아이들이 자라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쳐요. 아이들은 타인과의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 이후로 갈등을 해결하는 걸 더 어려워해요. 실수로 친구를 툭 쳐도 “미안해", “괜찮아" 이런 말을 주고받을 줄도 모르고 서로 불편해만 하죠. 다른 사람과의 충분한 교류 없이 혼자 지내왔기 때문이에요. 사회는 어쩔 수 없이 고도의 갈등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라,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관계를 만들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부족한 거죠.
그래서 사실 아이들에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여행을 가도 엄마, 아빠, 아이 셋이서 리조트에만 머무르거나 자연 경관만 보러 다니는 건 큰 의미가 없어요. 다른 사람 품에도 안겨보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눠봐야 해요. 그런데 최근엔 오히려 타인과의 경험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죠. 식구나 친척들도 줄고 있는 와중에 아이들이 너무 귀하니까 유괴나 감염 걱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못 만나게 해요. 동네에서 다른 아이들하고 놀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도 많이 줄었고요. 동네에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낯선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는 게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과 연결되면 이득도 생기지만 불편함도 생기기 마련이죠. 보통은 지나친 간섭이나 무례해 보이는 행동처럼 부정적인 게 먼저 다가오고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부장님이 갑자기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 을 먼저 경험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동네에서도 가까운 사람들과 먼저 친해지고 이득을 경험한다면, 불편함이 많이 해소될 거예요. 순서의 문제인 거죠.
이웃을 통해 좋은 경험을 만드는 게 동네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동네에서 일어나는 나눔이나 선행 같은 게 더 많아질수록요.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되게 많아요. 사실 인간은 취약한 인간을 도우며 살아왔거든요. 존재 방식이 원래 그래요.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아이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죠. 실제로 기부 같은 선행들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도 크게 기여하고요.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의구심이 들면 되게 힘들어하잖아요. 그럴 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자존감이나 효능감을 느끼는 데 많은 도움이 되죠. 그래서 당근에서도 나눔 같은 선행들이 많이 나타나는 거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 보상만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제적으로 성공했더라도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반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본인보다 더 취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의미 있게 잘 지내는 분들도 많고요. 본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걸 찾고 실천할 때, 개인의 웰빙이 올라가요. 경제적인 여건이 취약한 상태라면 경제적 보상도 굉장히 의미 있겠지만, 충분히 충족되고 난 후라면 더 이상의 부는 개인에게 큰 의미를 더하지 못해요. 그때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게 중요해요. 내가 속한 동네에서 그런 일을 찾는 행위가 개인의 웰빙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죠.
동네 커뮤니티 안에서 그런 경험들이 계속 늘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신뢰예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려면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내가 여기 있어도 괜찮겠다’ 이런 느낌을 받아야 하는 거죠. 소속의 욕구만큼 안전의 욕구도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커뮤니티 안에서 누군가 다른 구성원에게 사기를 쳤다고 하면 신뢰가 단번에 무너지잖아요. 또 믿고 있던 커뮤니티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상처가 더 크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당근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이웃들이 동네 커뮤니티로 한 발짝 다가가는 진정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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