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운전하다 터널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막 터질 것 같은 거예요. 갑자기 차가 멈춰서 죽으면 어떡하지. 엄청 불안했어요. 병원에 가보니 공황장애의 일종이래요.” 1년 전, 오랫동안 몸담았던 이사업체에서 퇴직한 후 기봉 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순간에 다다랐을 때, 기봉 씨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일이었다. 과거 이사업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근에서 ‘야옹이 용달’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기봉 씨는 야옹이용달을 통해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여정에 동행하고 있다. 딱 10년만 더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면목동 곳곳을 누비는 용달 사장님 기봉 씨를 만났다.
이사 일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기봉: 한 25년 됐나. 처음에는 큰 이사업체 소속 직원이었어요. 퇴직 후 쉬다가 다시 일을 해 보려 했는데 재작년에 코로나19 끝나고 이삿짐 일이 올스탑됐죠.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진 거예요?
기봉: 금리가 오르니까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이제야 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갑자기 쉬 어야 하니까 우울증까지 오더라고.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아무도 나를 안 찾아 주니까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있었죠. 어느 날은 터널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막 터질 것 같은 거예요. 차가 멈춰서 죽으면 어떡하지, 엄청 불안했어요. 병원에 가보니 공황장애의 일종이래요. 그래서 정신과까지 다니게 됐죠.
그럼 용달은 언제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기봉: 작년 겨울에 차를 고치러 갔는데, 카센타 사장님이 계시더라고. 나보다도 한 3살 정도 연배 있으신 분이었나 그랬어요. 내가 물어봤어요. 혹시 일을 어떻게 잡아서 하시냐고. 근데 자기는 뭐 당근도 하고 그런대요? 저는 회사에서 주는 이사일만 했으니까 몰랐죠. 그런데 나는 생각도 못 해 봤던 것들을 그분이 얘기해주는 거예요. 그 길로 집에 와 가지고 아들한테 내가 그랬지. 아빠가 이런 상황인데 당근으로 용달 사업을 좀 해볼까, 하고요.
그렇게 야옹이용달이 탄생한거군요.
기봉: 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마케팅이나 이런 걸 잘 아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양이 좋아하니까, ‘야옹이용달’로 하자고 한 거죠. 그리고선 유니폼, 토시, 모자 이런 것들을 뚝딱 만들어 주더라고요. 하하. 내가 유니폼을 좋아해요. 항시 갖춰 입어야 소속감도 들고 좋잖아요. 용달차 디자인도 아들이 아이디어를 줬어요.
어쩐지 용달차에 붙어있는 커다란 고양이 눈이 인상적이에요.
기봉: 차 때문인지 제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저를 먼저 알아봐요. 차를 보고 지나가다 이렇게 만나면 다시 또 인사도 하시고. 애들이 단체로 차를 쫓아올 때도 있어요. 애기 엄마들도 애들 데리고 나오다가 제 차가 있으면 “야옹이다, 야옹 야옹” 해요. 항상 이 동네에 주차돼 있으니까 다 아는 거죠.
기봉 씨에게 용달 일을 시작하며 가장 좋아진 게 뭐냐고 물으니, 가족 간의 대화가 많아진 것을 꼽았다. 가족끼리 공유 캘린더를 만들어 용달 업무 일정을 모두 공유하고, 모바일과 PC로 당근에 실시간 접속하며 동시에 소통한다는 것이다. 기봉 씨의 아들 윤필 씨가 도와준 덕분이다. 기봉 씨는 아들과의 소통이 많아진 것이 ‘최고 좋다’고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게다가 지난봄에는 야옹이 용달에 또 다른 든든한 팀원이 합류했다. 바로 기봉 씨의 아내 의매 씨가 그 주인공이다.
어머님은 어쩌다 같이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의매: 저도 원래 남편이랑 같은 이사업체 소속으로 한 20년 일했어요. 이삿짐 용달 아저씨들 함께 따라다니면서 짐 정리해 주는 일을 했거든요. 이렇게 한 팀으로 일하는 건 처음이지만요. 지금은 아저씨가 짐 옮기면, 뒷정리는 내가 하고 있어요. 짐 정리도 돕고 그냥 자잘한 살림살이 정리도 해 드려요. ‘이렇게 놓으시면 편해요. 앞으로 그렇게 놓고 쓰세요.’ 이렇게 딱딱 접어서 넣으라고 다 가르쳐주고 그래요. 또 자식 같으니까.
함께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기봉: 둘이 가면 내가 힘이 나요. 의지가 되고 마음이 놓이더라고. 새로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이 사람이 성격이 뭐 뒤끝이 없더라고요. 앞에서 할 소리는 하고 그러더라고. 하하. 그런 건 몰랐지.
의매: 나는 이 사람이 손님들한테 뭐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섬세하게 해주나, 이런 것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요. 처음에는 그거 때문에 엄청 싸웠어요. 너무 다 해 주니까.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이에요?
의매: 랩 포장 같은 것도 일일이 다 하는데 공짜로 해 줘요.
기봉: 저는 포장 이사를 했다 보니까, 물건마다 맞는 커버가 다 있어요. 랩은 매번 새로 사고요. 냉장고를 사든 소파를 사든 포장을 다 갖다 해줘요. 고객님들이 그걸 너무 좋아하세요.
비용도 안 받고 그냥 해주시는 거예요?
기봉: 아무리 중고를 사도 물건은 소중한 거거든요. 특히 아기들 피아노 같은 거는 새 랩으로 깨끗하게 다 포장해 줘요. 아기들이 쓸 거니까 더 신경 써야죠. 그럼 고객님들도 좋아하세요.
의매: 그게 시간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이런 적도 있어요. 우리가 일을 못 받으면 새로 날짜를 잡으면 되는 건데, 더 싼 전국 용달이 있다 하면서 그런 것까지 다 연결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동네 단골들이 떨어지지 않느냐, 나는 그러거든요. 그 사람들이 그게 싸니까 그거 한번 쓰면 당신한테 오겠냐고. 근데 이 사람은 오든지 안 오든지 그냥 해주면 좋지 뭘 그러느냐고 알려줘요.
사장님은 일 뺏길까봐 걱정 안 되세요?
기봉: 에이 서로 잘 되면 좋잖아요. 말 그대로 ‘운’수업이라고 내 일은 따로 있어요. 우리 거 뺏어가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 할 필요가 없어요. 다 각자 자기 운에 따른 일이 있는 거예요. 내 일은 따로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뭐든 나눠 먹어야지 맞아요.
저는 전에 같이 일하던 지인들한테 당근 홍보도 엄청 했어요. 퇴직하고 조금이라도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이 저로 인해서 좀 탄력을 받아가지고 했으면 좋겠다, 그런 거예요. 처음에는 제 친구들도 ‘당근이 뭐냐, 먹는 거냐’ 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도 막 홍보해요. 너무 재미있으니까 꼭 해보라고. 아는 형님도 최근에 당근으로 일 구하고 있다고 너무 고맙다고 연락 왔더라고요. 그런 게 좋지. 같이 일하게 되니까.
일하면서 힘드실 땐 없으세요?
의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이사를 하러 갔는데 화장실이고 주방이고 뭐 그냥 엉망인 거예요. 이사가 문제가 아닌 거지. 내가 청소를 다 해줬는데도, 오래 둬서 시커멓게 된 거는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락스 하나를 추천해 주면서 그거 사다 놓으라고 그러고 나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사 끝나고 남편이 당근으로 또 그 손님한테 연락한 거예요. 락스 사진 보내주면서 사용 방법도 알려주고. 그걸 또 언제 사진까지 보내줬는지. 참나. 진짜 몰랐다니까요.
기봉: 그분은 나중에 따로 연락도 왔어요. 사장 님 너무 고맙다면서요. 알려준 대로 해보니까 곰팡이고 뭐고 다 싹 가시더래.
용달하시다 보면 동네에서 다양한 분들도 많이 만나실 것 같아요.
기봉: 막 서울로 올라온 학생도 있고, 15년씩 혼자 산 기러기 아빠도 있어요. 직업도 다양하고요. 판사고 변호사고 해도 별수 없어요. 이사하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한 팀이에요. 같이 한 팀이 되어 냉장고 나르고, 침대 나르고. 수직 관계가 아니고 수평 관계예요. 한 번은 판사분이 있었는데 ‘법원에서는 고객님이 판사지만 이사할 때는 내가 판사예요.’ 그랬더니 막 웃더라고요. 그냥 재밌게 해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의매: 전에 회사에서 일할 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못 했어요. 바로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 있거든. 그래서 우리는 그냥 딱 마음 내려놓고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입 꾹 다물고 일하는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더 편하게 얘기하시겠네요.
기봉: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죠.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해주는 거예요. 그분한테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요. 다 내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어떻게 내가 마음을 먹느냐가 중요하죠.
손님들이랑은 무슨 이야기 나누세요?
기봉: 그냥 사는 얘기 하죠. 이 일대가 저소득층 청년들 살라고 근방에 청년주택이 많아요. 보증금 5천에 45만 원, 이렇게 싸요. 이사 비용도 지원되더라고요. 이사 다니다 보면 이런 걸 알게 되니까 어떤 분들한테는 제가 말해주죠. 서울시에서 이사 비용 나오는 거 신청했냐고. 어떤 고객님들은 찾아보더니 기간을 놓쳤대요. 그럼 다음에 꼭 신청하라고 알려주죠.
제가 당근하는 고객님들한테는 ‘애국자세요’라고 제일 말 많이 해요. 당근으로 거래하는 물건들 보면 엄청 좋아요. 만약에 당근이 없었다면 생활폐기물로 가는 거잖아요. 당근 덕분에 이렇게 서로들 쓸 수 있으니까 애국이죠. 당근으로 옮기는 물건 1위가 뭔지 아세요? 침대 매트요. 특히 슈퍼 싱글. 젊은 사람들 머리가 좋은 게 뭐냐면 매트는 여기서 사고, 프레임은 또 다른 데서 사요. 딱 모아 보면 사이즈가 기가 막히게 딱딱 맞아요. 너무 똑똑한 거죠. 옛날에는 새로 이사 가는 데 사이즈 안 맞으면 다 버렸어요. 멀쩡한 게 너무 아까워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갖다 팔기도 했어요. 요새는 그런 거 없어요. 쓸 만한 건 서로 당근으로 사고팔잖아요. 그게 애국자죠.
일하실 때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하세요?
의매: 고객님들한테 고맙다 생각하죠.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가 일을 하는 거고 돈을 버는 거잖아요. 나는 항상 여태까지 그런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아.
기봉: 식당 가서도 물어보면요. 올해 같이 이렇게 장사 안되는 때가 없다 그래요. 저희는 손님들이 불러 주는 거니까 돈을 버는 거잖아요. 둘이 가서 일도 하고. 이게 고마운 거죠. 그만큼이라도 버니까.
그런 생각으로 일하시면 고객들도 잘 알아줄 것 같아요, 두 분 마음을요.
기봉: 일 끝나고 고객님들이 당근에 남겨준 좋은 후기를 보면 뿌듯해요. 집에 와서 씻고 이렇게 누우면, 후기가 벌써 올라온 거예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남겨주신 것 보면 다 기억 나고 소중하고 그래요. 오늘 어떤 것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이런 것 보면 힘이 나죠.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많이 고단하실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기봉: 어떨 때는 일 마치고 와서 막 눈이 감겨요. 어제도 밤 12시 반에 퇴근해가지고 쉬는데 또 문의가 온 거예요. 그럼 가끔은 대충 대답하고 잠들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렇게 달아주면 서로 좋은 기억으로 남으니까 좋잖아요. 이렇게 일하는 게 재밌으니까 사실 힘든 줄도 잘 모르겠고요. 몇 달 전에는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이제 오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울증이 다 나았다고. 병원 안 다닌 지 반년 넘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일 끝나면 여기 동네 사람들이랑 막걸리 한 잔 먹고 그렇게 사니까 좋아요.
앞으로도 야옹이용달을 쭉 볼 수 있을까요?
기봉: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년은 더 하고 싶은 게 욕심이에요. 우리 연배 정도는 금전적인 것도 있겠지만 내가 놀지 않고 움직이고 일을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그 생각만 해요. 몇 년 더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내가 한 75세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뿐이에요.
새벽녘 찬 공기를 가르며 고요한 골목을 밝히는 야옹이용달 트럭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느 이웃은 정들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야 하겠지만, 그 여정에 기봉 씨와 의매 씨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집에 쌓인 소중한 추억들은 트럭 뒤편 흔들리는 상자에 고스란히 담겨,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금 새 가치와 의미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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